(조선비즈)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의 염증이다

출처 :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366&aid=0000520131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의 염증이다?

          

기사입력2020.05.08. 오전 6:12

정신문제 생체지표로 측정 기술 발전… 염증 치료 시도 주목
8일 한국어판 출간 ‘염증에 걸린 마음’... "몸 염증과 뇌 관계"


그동안 '마음의 병'이라는 모호한 정의로 인식되던 우울증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접근법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신경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울증뿐 아니라 조현병, 공황장애,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 현대인을 괴롭히는 정신적 문제를 좀 더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생체지표 측정 기술이 진화하면서 새로운 치료법이 모색되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우울증이나 조현병과 염증성 질환의 연관관계에 대한 발견이 논문으로 다수 발표되면서 그동안 1980년대 등장한 프로작 이후 이렇다할 진전이 없던 치료제를 한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우울증이 염증성 질환이라는 주장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은 에드워드 불모어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입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뇌와 신체 내 염증의 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해왔고 수십편의 논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일러스트=이철원

불모어 교수는 8일 한국어판이 발간되는 저서인 '염증에 걸린 마음(Inflamed Mind)'에서 "이제 우리는 사이토카인(cytokine)이라 불리는 혈액 속의 염증 단백질이 혈뇌장벽을 뚫고 몸에서 뇌와 마음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우리 몸의 염증 상태, 즉 면역계가 위협을 각성하는 수준은 우리의 기분과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몸의 염증은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이는 다시 우리가 우울증으로 알고 있는 기분과 인지, 행동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설명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우울증이 환자의 심리적 기제와 환경, 사건 등에 의해 주로 형성된다는 기존의 심리학적 접근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해석인 셈입니다.

우울증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왔지만 우울증이 뇌의 대사물질 분비와 관련된 질환이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80년대입니다. 이 시기부터 우울증이 뇌의 '행복물질'로 알려진 세로토닌(serotonin)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것이라는 '모노아민 이론'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무기력, 무의지, 무의욕 등 우울증의 증상을 가지고 그저 나태하고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낙인을 찍던 과거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최근 10년간 특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 뇌 활동과 대사물질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신체 내 염증, 면역체계 등이 뇌에까지 영향을 미쳐 우울증이나 자살 등의 행위로 이어진다는 이론이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강박장애 환자의 뇌를 감마카메라로 촬영한 모습(왼쪽). 하얗게 표시된 부분은 피가 과도하게 몰려 생각이 회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오른쪽은 수술 직후 뇌 MRI 사진으로, 희고 동그랗게 보이는 부분을 파괴해 혈류를 차단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그동안 다수의 논문을 통해 신체질환이 동반되지 않은 주요 우울장애에서도 염증표지자들이 증가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울증 환자의 혈액에서 염증촉진 사이토카인이 증가하고 항염증 사이토카인이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암 수술이나 출산 이후 회복 과정에서 일부 환자들에게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이같은 사이토카인들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염증촉진 사이토카인인 IL-1, IL-2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합성과 순환을 방해하는 한편 세로토닌의 전구물질인 트립토판을 분해하는 인돌아민(indolamine-2), 3-디옥시네이저스(dioxygenase)의 활성화를 증가시켜 세로토닌 저하를 일으킨다는 것이 불모어 교수의 주장입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동안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은 (눈에 보이는) 현상학적인 진단에 의존했지만 실제 그 밑에는 굉장이 다양한 원인이 있다"며 "뇌영상 기술의 발달 등으로 좀 더 정확한 생체지표를 통해 생체지표적으로 정신질환을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게 됐고 치료 역시 한 단계 진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수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우울증과 그 치료 방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 해에 약 1만3000여명에 달하는 사람이 자살했고, 상당수는 경제적 이유나 우울증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살자들의 3분의 1 이상은 우울증 증상을 갖고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신경정신과나 항우울제 등에 대한 낙인과 오해들이 많다"며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다. 미국의 경우 가정의학과에서도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와 같은 항우울제를 적극적으로 처방하는데 국내는 너무 안쓰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황민규 기자 durch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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